[정전스님 법문]
5. 명호의 공덕은 의혹을 깨뜨리고 소원을 성취시킨다
『왕생론주』에 또 요점을 찌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하권의 시작부분인 ‘찬탄문’에서 수행의 현상에 대해 거론하면서 여실한 수행이 있고 여실하지 못한 수행이 있다고 하셨지요.
무애광여래의 명호는 능히 중생의 일체 무명을 깨뜨릴 수 있고 중생의 일체 소원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칭명과 억념을 했음에도 무명이 여전히 존재하고 소원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왜 그러한가? 여실하지 못한 수행으로 말미암아 명호의 뜻과 상응하지 않은 까닭이다.
무엇을 여실하지 못한 수행이라 하고, 명호의 뜻과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이를테면 여래가 ‘실상신’이고 ‘위물신’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세 가지 상응하지 않음이 있으니, 첫째는 ‘신심이 순수하지 않아 있는 듯 없는 듯한 까닭이요’, 둘째는 ‘신심이 전일하지 않아 결정됨이 없는 까닭이요’, 셋째는 ‘신심이 지속되지 않아 다른 생각이 끼어든 까닭이다’.
無礙光如來名號,能破眾生一切無明,能滿眾生一切志願。然有稱名憶念,而無明猶在,而不滿所願者,何者?由不如實修行,與名義不相應故也。
云何為不如實修行,與名義不相應?謂不知如來是「實相身」,是「為物身」。
又有三種不相應:一者「信心不淳,若存若亡故」;二者「信心不一,無決定故」;三者「信心不相續,餘念間故」。
방금 말했듯이 정토법문에서는 수행을 말하지 않고 칭명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칭명’은 일반 수행과 비교했을 때 쉬우면서도 초월적이지요.
담란조사께서는 여기서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 명호는 우리의 무명을 깨뜨릴 수 있고 우리의 소원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부류의 사람들은 현재 이미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칭념하고 있음에도 무명을 깨뜨리지 못했고 그의 소원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대사님은 여기서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먼저 무명과 소원성취에 대해 해석하겠습니다.
우리의 무명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어리석음의 무명(癡無明)’이고 하나는 ‘의심의 무명(疑無明)’입니다. 어리석음의 무명이란 탐·진·치 등의 각종 번뇌를 말하는데, 이것을 무명이라 부릅니다. 일체의 무명은 모두 어리석음의 무명 속에 포함됩니다. 또 다른 무명은 의심의 무명인데, 의심의 무명은 아미타부처님의 구제에 대해 의혹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탐·진·치 등의 일체 무명이고,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의심의 무명입니다. 그렇다면 아미타부처님을 의심하는 이 의심의 무명을 깨뜨린다면, 다시 말해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를 믿고 받아들인다면 설사 탐·진·치의 무명이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탐·진·치 삼독번뇌를 반드시 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미타부처님의 이 한 구절 명호가 우리의 무명을 깨뜨리는데, 가장 먼저 우리의 의심의 무명을 깨뜨립니다. 의심의 무명을 깨뜨리기만 하면 탐·진·치 번뇌도 때가 되면 반드시 사라지게 되므로, 먼저 의심의 무명을 깨뜨리게 되고 게다가 주로 깨뜨리는 게 바로 의심의 무명입니다.
정토법문의 입장에서 말하면 심각한 무명은 탐·진·치가 아니라 의심입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를 의심함으로써 우리는 계속해서 삼계육도에서 죄업을 짓고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윤회가 있고 사람 몸만 받으면 십악을 짓게 되고 약육강식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아미타부처님을 의심하는 이 ‘의심의 무명’의 죄업이 살인·방화·오역·정법비방 등의 죄업보다 더 무거운 게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를 의심하고 부처님의 지혜를 의심하며 구제를 믿지 않는 죄업은 살인과 방화보다 더 중대합니다. 왜냐하면 의심으로 인해 왕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윤회를 하게 되며, 윤회를 하다보면 십악과 오역과 정법비방의 죄업을 짓게 될 기회가 생기게 되고, 그 어떤 죄업도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의심’,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를 의심하는 것은 모든 죄 중에서도 가장 큰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원성취’할 때 소원에도 ‘총總’과 ‘별別’이 있습니다. ‘총’은 우리 인생의 소원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갖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고, 이것도 바라고 저것도 바라는 등 소원이 몹시 많습니다. ‘별’은 곧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소원하는 이 ‘원’을 말합니다.
다른 원들도 비록 많기는 하나,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이 소원만 성취할 수 있다면 다른 원들도 다 이룰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불하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지 성불하고 나서 소원성취를 못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불을 하면 지혜와 신통이 생겨서 뜻대로 자재하게 신통변화를 나투어 마땅히 어떤 몸으로 득도될 수 있으면 어떤 몸을 나투어 그 사람을 위해 설법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원성취를 하려면 우선 왕생의 소원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이 왕생의 원이 일체 원의 근본이므로, 이 ‘원’만 성취되면 기타 원들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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